동사찬요(東史纂要)
조선시대 문신 오운이 1606년에 저술한 역사서.
유성룡(柳成龍)이 왕에게 바쳐 유림(儒林)의 표준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1609년(광해 1)에 계림부(鷄林府)에서 처음 간행했다가 1614년에 한백겸(韓百謙)의 충고로 지리지(地理志)를 첨가하고, 길재(吉再) 등 고려 말의 은자들을 추가해 개찬하였다.
이 책은 권1의 군왕기(君王紀)와 권7의 열전(列傳)으로 되어 있어 기전체 형식에 가깝다. 그러나 지(志)가 없으며, 개찬할 때 간단한 지리지를 첨가했을 뿐이다. 저자 자신이 쓴 범례가 있고, 한백겸이 쓴 후서(後序)가 들어 있다.
이 책은 관찬 사서로서 『동국통감』·『동국사략』·『고려사』·『삼국사절요』를 참고하였다. 또한 『퇴계문집』·『남명유고 南冥遺稿』·『죽계지 竹溪志』·『병진정사록 丙辰丁巳錄』 등 사림 학자들의 문집을 많이 이용하였다.
기자조선을 높여서 우리 나라 풍교(風敎)의 시작이 기자(箕子)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권근(權近)의 『동국사략』에 의거해 신라를 위주로 삼국시대를 서술하였다. 즉, 신라왕을 표제로 내세워 그 밑에 고구려·백제의 역사를 부기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사대와 교린 관계기사는 충실하게 수록하고 애국 명장과 충신·열사, 그리고 절의(節義)를 지킨 인물들을 많이 수록하였다. 그 결과 길재·이양중(李養中)·서견(徐甄)·김주(金湊) 등 고려 말 4군자(四君子)가 열전에 수록되었다. 반면 조선 개국에 공이 많은 정도전(鄭道傳)·윤소종(尹紹宗)·조준(趙浚)·남은(南誾) 등과 같은 인물이 빠졌다.
『동국통감』에 실린 사론(史論)은 대부분 그대로 실었으나 이황(李滉)·주세붕(周世鵬)·남효온(南孝溫)·김종직(金宗直)·이현보(李賢輔)·조식(曺植) 등의 의견을 사론에 반영한 것은 새로운 시도이다.
삼한의 위치에 관해서는 처음에 최치원설(崔致遠說)과 권근설을 모두 소개하였다. 그러나 한백겸의 비판을 받고, 뒤에 개찬할 때 한백겸의 삼한설을 따로 수록하였다. 지리지 역시 한백겸의 충고에 의해 보간(補刊)한 것인데, 신라·고구려·백제·고려의 순으로 서술하였다.
이 책은 16세기초 박상(朴祥)이 쓴 『동국사략 東國史略』에 대한 불만에서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