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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貫鄕) 아주(鵝洲)의 내력 아주신씨의 관향(貫鄕)인 아주(鵝洲)는 옛날 거제군(巨濟郡)에 있은 한 지역의 이름이었다. 현단위(縣單位)의 지역으로 다스리는 책임자의 관리(官吏)는 현감(縣監)보다 한 단계 높은 벼슬인 현령(縣令)이었다. 신라시대는 현(縣)의 우두머리 벼슬이 선저지(先沮知)에서 사찬(沙餐)까지가 현단위의 사찬 위에는 7개의 벼슬이 있는 것이다. 고려에서는 비교적 지역이 큰 현단위에 현령을 두었다. 현령의 벼슬 품계는 5품과 6품으로 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는 현령을 안집별감(安集別監)이라 불렀다. 현령 위의 벼슬에는 종 4품의 벼슬인 군수(郡守)이다. 조선시대 지리서(地理書)격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또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다음과 같은 거제(巨濟)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本海中島新羅文武王初置裳郡景德王改令名高麗顯宗置縣令元宗十二年因倭失土僑寓居昌縣之加祚縣忠烈王時倂于管城尋罷本朝太宗十四年倂于居昌號濟昌縣又尋罷世宗十四年後還舊島爲知縣事後改縣令 ○ 官員 : 縣令 訓導 各一人 ○ 郡名 : 裳郡 岐城 본해중도신라문무왕초치상군경덕왕개령명고려현종치현령원종십이년인왜실토교우거창현지가조현충열왕시병우관성심파본조태종십사년병우거창호제창현우심파세종십사년후환구도위지현사후개현령 ○ 관원 : 현령 훈도 각일인 ○ 군명 : 상군 기성 역해(譯解)하면, 거제는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다. 신라 문무왕(文武王)이 처음에 상군(裳郡)으로 설치하였고 경덕왕이 그 명칭을 바꾸었다. 고려 현종(顯宗)은 현령(縣令)을 두었고 원종(元 宗)12년에는 왜구(倭寇)때문에 땅을 잃고 거창현(居昌縣)의 속현(屬縣)인 가조현(加祚縣)에 백성들이 거주하였다. 충열왕(忠烈王)때에는 관성(管城)과 병합하였다. 그리고 곧 파(罷)해 버렸다. 조선시대 태종(太宗) 14년에는 거창과 거제를 병합하여 제창현(濟昌縣)이라 불렀다. 얼마 뒤 또 파하고 세종(世宗)14년에 옛 섬으로 환원시켰다. 지현사(知縣事)라는 관직을 두었으나 그 뒤에 현령(縣令)이란 관직으로 바꿨다. ○ 관원은 현령(縣令) 1 명과 훈도(訓導) 1 명을 두었다. ○ 군(郡)의 명칭이 상군(裳郡) 기성(岐城)이란 이름이 있었다. 문무왕은 신라 30 대왕으로 재위기간이 서기 661년부터 681년 까지 20년간이었다. 경덕왕은 신라 35대왕으로 재위기간이 서기 742년부터 765년까지 23년간이었다. 고려의 현종(顯宗)은 8대왕으로 재위기간이 서기 1009년부터 1031년까지 22년간이었다. 고려 원종(元宗)은 24대왕으로 서기 1259년부터 1274년까지 15년간 재위하였다. 충열왕(忠烈王)은 고려 25대왕으로 재위기간은 서기 1374년부터 1388년까지 14년 간이었다. 조선의 태종은 제3대왕으로 재위기간이 서기 1400년부터 1418년까지 18년간이었다. 태종 14년은 서기 1416년이다. 세종(世宗)은 조선의 제4대왕이다. 세종 14년은 서기 1432년이다. 신라의 선저지(先沮知)라는 관직은 벼슬아치들의 17등급에서 마지막 등급에 해당하는 하위급 벼슬이다. 사찬(沙餐)은 신라의 관직에서 중간에 들어가는 즉 8순위의 벼슬이다. 훈도(訓導)는 조선시대에 있었던 지방의 관직으로 종 9품에 해당하는 품계(品階)였다. 최하위급 벼슬이다. 정 1품부터 종 9품까지 벼슬의 품계가 있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의 거제편에 아주폐현(鵝洲廢縣)에 관한 내용도 있다. 그 원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在本島距縣東十六里本新羅 재본도거현동십육리본신라 居老縣屬于菁州昭聖王 거노현속우청주소성왕 爲學生祿邑至景德王改令名 위학생녹읍지경덕왕개령명 來屬高麗及本朝因之 래속고려급본조인지 역해(譯解)하면, 본섬(거제도)에 있으며 현(縣)의 동쪽 16리 거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거로현(居老縣)으로 청주(菁州)에 예속되었다. 소성왕(昭聖王)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녹(祿)을 주는 곳으로 하였다. 경덕왕(景德王)때 와서는 지금의 명칭으로 고쳐 거제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조선에서도 그대로 거제의 속현으로 두었다. 소성왕(昭聖王)은 신라 39대왕이다. 재위기간은 서기 798년부터 800년까지 불과 2년 간이었다. 거제 관내 속현으로 있었던 아주현 이외에 송변현(松邊縣), 명진현(溟珍縣)이 있었는데 역시 아주현처럼 폐현(廢縣)이 되었다. 폐현된 아주와 송변의 사람들은 내륙지방인 거창으로 이주해 갔다. 명진현의 사람들은 역시 왜구를 피해 진주(晋州)로 옮겨갔다. 아주현이 폐현이 되기 전에 이 지역에 존재하였던 성씨는 신(申), 문(文), 갈(葛), 조(曹)였다. 이 중에 신(申)의 성은 아주신씨를 일컬었다. 왜구를 피해 아주와 송변을 버리고 거창으로 옮겨온 사람들은 집촌(集村)을 이루었다. 그래서 아주에서 온 이주민의 집촌은 아주촌(鵝洲村)이라 불려졌다. 고려 24대 원종(元宗)때는 삼별초(三別抄)의 난이 있었다. 삼 별초는 고려의 최씨무신정권(崔氏武臣政權)때 집권자(執權者) 최우(崔璃)가 도둑을 잡기 위해 만든 야별초(夜別抄)를 좌우(左 右)로 나눠 좌별초(左別抄)우별초(右別抄)라 하고 몽고와 싸우 다가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병사들을 모아 신의군(神義軍)으로 조직하여 만든 군대와 합쳐 삼별초라 불러졌다. 이 삼별초는 몽고에 굴종(屈從)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몽고와 항쟁하기를 원했다. 당시 고려의 왕과 조정의 신하들은 몽고를 상국(上國)으로 받들며 심(甚)히 굴욕의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몽고가 강한 나라이고 하여 어쩔 수 없는 고려 조정이기도 하였다. 몽고의 침입을 많이 받아 피치 못하게 상국으로 모셔야 하는 실로 허약했던 고려였다. 그런 가운데 삼별초와 같은 우국충정(憂國衷情)을 표출하는 집단도 나타났던 것이다. 이 삼별초는 고려의 관군(官軍)과 몽고군에 의해 쫓기는 처지가 되어 멀리 남쪽 해안가 진도(珍島)로 밀려가고 거기서도 또 추격을 받아 제주도까지 쫓겨 갔으며 한편으로 경상도쪽 해안의 섬으로 숨어들어 가기도 하였다. 여기서 거제도도 그들 삼별초에 점거 당하고 관아의 관리와 주민들은 삼별초를 피해 육지로 빠져 나온 것이다. 역시 거창으로 왔는데 거창의 속현인 가조현(加祚縣)에다 정착을 하고 정착지로 거제(巨濟)라 이름 붙이고 살았다. 여기에서 아주촌도 등장하였다. 가조현은 현재 가조면 지역이다. 본래 신라 때 가소현(加召縣)이라 불렀는데 이 명칭에서 소(召)가 변음이 되어 조가 되었던 것이다. 거창의 옛 지명에 거타(居陁)라는 지명으로 불려지기도 했는데 거제도 주민과 관아가 몰려와서 혹간 그런 지명이 등장하기도 했는지 모른다. 거타는 섬에 거주하였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타(陁)는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라는 뜻의 글자이다. 이런 지명이 고려 원종 임금 이후에 나타난 지명이라면 분명 거제도에 의해 그런 지명이 나타났음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거제도에는 송변현(松邊縣)도 있었는데 역시 거창으로 들어와 현 남상면 지역의 무촌(茂村)남쪽 5리 지점에 자리잡고 세거했다. 이렇듯 옛 거제는 빈번한 왜구의 침입과 삼별초에 의해 점거 당하는 수난(受難)이 많았고 하여 속현 아주도 수난과 폐현이라는 허망한 역사를 본 것이다. 관향(貫鄕)이 사라졌거나 폐현이 되었다는 것은 어느 성씨 문중도 마찬가지로 허탈하였을 것이다. 당시 아주를 본관으로 삼은 신씨(申氏)도 그랬음은 분명한 것이다. 옛 아주지역은 오늘날 대우조선(大宇造船)이 들어섰다. 세계 굴지의 선박건조회사로 옛 아주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주신씨로 봐서는 전날의 허망에서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신씨(申氏)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의 지리지(地理志)에 실려 있는 경상도(慶尙道)의 각읍(各邑)에 있는 성(姓)과 본관(本貫)가운데 현존하는 본관과 개관(改貫)하였거나 모관(模貫)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본관은 영해(寧海), 고령(高靈), 아주(鵝洲) ※ 개관을 하였거나 모방된 관향 또는 벽관(僻貫)으로 잔존한 것은 신광, 청도, 하빈 해안, 장기, 임하, 순흥, 영천, 은풍, 화녕, 산양 진해 개관(改貫)은 17세기 이래 인조반정(仁祖反正)과 병자호란(丙子胡 亂)을 겪으면서 숭명배청사상(崇明排淸思想)이 나타나면서 숙종, 정조 때 신흥세력들의 조상세계(祖上世系)조작이 발호하고 위보(僞譜)가 속출하였다. 여기서 본관을 바꾸거나 어느 유명 본관에다 끼워넣고 한 것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선생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 보는 거제도(巨濟島)의 아주(鵝洲), 명진(溟珍), 송변(松邊). 오늘날의 지도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 표시의 지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