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정사(茂林精舍)는 북헌(北軒) 신섬(申暹)이 기거하던 곳에 옛터를 개척하여 1939년에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이 정사는 무림의 남산 허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깎아지른 절벽에 거의 매달리듯 앉아 있다. 워낙 가파른 절벽 지대라 정자가 확보할 만한 공간이 대단히 협소하여 겨우 정자가 앉은 자리를 제외하고 나면 앞쪽으로 겨우 1m를 넘지 못할 만큼의 여유밖에 없다.
현판으로는 ‘무림정사’라는 제호 현판 외에 ‘북헌(北軒)’이라는 당호 현판이 별도로 걸려 있으며, ‘무림정사기’, ‘상량문’, ‘중기기’를 새긴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그 외 시판류는 없으며 다만 다른 자료에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한다.
北厓蒼翠是松竹 북쪽 언덕 푸른 것은 송죽이요
數莖孤竹我家庭 몇 떨기 외로운 대나무 나의 뜰 안에 있다오
鼎寺田園新苗綠 정사의 전원에는 새싹이 싱그럽고
鉢山丘墓舊林靑 발산의 언덕에는 옛 숲이 푸르고나
遙瞻鳳闕天恩重 멀리 궁궐을 바라보니 천은이 무거운데
晩退龍州己事停 늦게 용주에 물러나니 세상일 없구나
撫菊擁樽因自酌 국화 어루만지다 홀로 술잔을 드나니
淵明何代醉而醒 도연명은 어느 때에 취하고 깨었는가.
건축구성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급한 경사지를 계단식으로 다듬어 평지를 조성하고 앞쪽으로 팔각형의 하층 주를 설계하여 전면의 툇간이 누마루를 이루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위쪽 전면 주는 원주를 세웠다.
평면은 어간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이다. 전면에는 반 칸의 툇간을 두었으며, 툇간 주위에는 계자각을 둘렀다. 가구는 오량가이며 처마는 홑처마집이다.
관련인물
- 신섬(申暹)
아주는 경남 거제도에 있는 지명이다. 본래 신라의 걸현이었으나 경덕왕 때 아주로 고쳐서 거제에 속하였다. 아주신씨는 평산신씨에서 분적된 계통이다.
시조 호장 영미(英美)의 현손 우(祐)는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과 전라도 안렴사를 역임하였다. 그는 효행이 뛰어나 아버지가 돌아가자 여막에서 3년간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여 무덤 앞에 쌍죽이 돋아났다 한다.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고 그가 살던 마을 이름을 효자리라 하였으며 효행을 돌에 새기고 『삼강행실록』에 기록하였다.
신우는 이성계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자 의성군 다밀면 망경산으로 내려가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우의 7세손 원록(元祿)은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교수(敎授)를 지냈다. 신재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설립하자 찾아가 문하생이 된다. 동료와 장천에 서원을 세웠으며 장천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그다음으로는 군기시정 광귀(光貴)가 있으며, 그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희신(希信)은 통훈대부로 단양군수를, 차남 희충(希忠)은 하동현감을 지내고, 막내 희경(喜敬)은 어모장군에 올라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삼강행실록』에 행실이 기록된 지익(之益)의 손자 응태(應泰)는 우암 송시열의 문인으로 학문이 뛰어나 『사서제요』와 『천명태주도』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신섬은 자는 예중(詣仲)이며, 호는 북헌(北軒)이다. 춘년(春年)의 아들이다. 1539년(중종 23)에 나서 1594년(선조 27)에 졸하였다. 퇴계의 문인으로 관직에 나가 중훈대부(中訓大夫)에 이르고,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과 통례원 인의(通禮院引儀)를 거쳐 용궁현감(龍宮縣監)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고 만년에는 귀향하였다.
고을정보
문경 > 남동권 > 영순면
- 영순면(永順面)은 문경시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용궁면(龍宮面), 서쪽는 함창읍(咸昌邑), 남쪽은 풍양면, 북쪽은 산양면(山陽面)에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곳의 지명은 신라시대에는 북면임하(北面林下) 또는 무림부곡(茂林部曲)이라 불려지다가 고려 원종 때(1260년경) 태금취(太金就)라는 장군이 임하촌(林下村) 출신으로 몽고군과 싸움에서 전공을 세웠다 하여 부곡(部曲)에서 현(縣)으로 승격시켜 상주(尙州)에 예속되었다가, 조선 초에 상주목(尙州牧) 영순면(永順面)으로 호칭되었다.
그 후 조선 순종 때 문경군에 예속되었고 고종 32년(1892년)에 일시 용궁의 서면(西面)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궁서면의 일부인 왕태, 오룡, 금림, 달지와 함창(咸昌) 동면(東面)의 전촌, 율곡, 말응을 병합하여 오늘의 영순면(永順面)이 되었다.
면적은 38.1㎢로 문경시 전체면적의 1/23도 안 되는 비교적 작은 면(面)이며 온화한 기후에 인심도 순박하고 좋으며 미곡 위주의 영농으로 문경시 제2곡창지대로 알려져 있다. 11개리동(里洞)으로 편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