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정성은 하늘이 완성시켜주는 것이니 억지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부모님) 살아 계실 때 모시는 법도나 돌아가신 후 보내는 정성에는 차이가 없어야 한다. 효성이 지극하면 근본이 이미 바로 선 것이다. 일마다 응하고 돈독한행실은 집안에 근거한 것이며 선한 행실은 밖으로 미루어 나온 것이다. 잠깐 사이에 미미한 녹봉이라도취하려 한 것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함이었다. 정성을 다하여 기근을 구제하였으며 사람들의 어려움을 구제하는은혜를 베풀었다.
贄文往謁 愼齋之門 屢蒙賞 嗟許以德器 硏精篤志 言行相符 抱德來隨 佩服終始
신재 주세붕의 문하에 글을 지어가서 뵈었고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덕스러운그릇으로 인정받았고 독실한 뜻을 갈고 닦았으니 말과 행동이 서로 부합되고 덕을 품고 와서 따르니 처음부터 끝까지 탄복한다.
憫我後學 無處藏修 慇斯懃斯 庠塾之事 勉勗後進 以衛斯文遺澤 在人百歲如昨 歿世愈久 仰德滋深
우리 후학들이 책을 두거나 수양할 곳이 없음을 가엾게 여기시어 은근히 차분히 숙사를 만들어 주시어 후진들을힘쓰도록 하셨으니 사문이 지켜지는데 은택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백년도 어제와 같으니 돌아가신지 오래되어도덕을 우러름이 매우 심하다.
睠彼崇阿 有儼廟貌日辰之吉 于以安靈 靑衿鼎來 邊豆有楚 千秋無替 歆我馨香
돌아보니 높은 언덕이여, 엄연히 자리한 사당이여. 일진이 길하니 영혼도 평안하시기를. 유림들이 모여와서 제사 음식을가지런히 차려 놓으니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변함이 없으리라. 우리의 제물을 흠향하소서.
春秋享祀文 춘추 제사 때 올리는 글
心存孝悌 學務踐實
마음 속에 효성스러움과 공경심을 간직하고 배운대로 실천하는데 힘쓰시어
表裏相符 無憾存歿
겉과 속이 꼭 같았으니 살고 죽음에 유감이 없으시리이다.
祭悔堂申公墓文회당 신공의 묘에 제사하는 글(현령 안응창)
維大歲 丙申 四月己酉朔 初二日庚戌 知縣事順興安應昌謹使幼學申塾敬 祭于故孝子悔堂申公之墓
해를 헤아려 보니 병신년 4월 기유삭 초 2일 경술일입니다. 현의 지사 본관 순흥 안응창은 삼가 유학 신숙경으로하여금 고효자 회당 신공의 묘에 제사지내게 합니다.
생각건대 안렴사공께서는 승사랑의 먼 후손으로 훌륭한 자손이니 일찍부터 집안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고 어릴적부터 특출난 뜻이 있었습니다. 온갖 행동의 근원인 효성심이 돈독하여 집안의 아름다움을 이으셨습니다. 유검루처럼 대변을 맛보시며 병수발 하시었고, 고자고처럼 피눈물 흘리면서모친상을 치르셨으며, 죽을때까지 모친의 영정을 걸어놓고 마치 곁에 계시는 듯이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臨水遇毒 負伯涉川 本孝以梯 公何勉焉
물가에 이르러 독한 것이 있다 하여도 형님을 업고 내를 건넜으니 본래 효성스러움과 우애함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공이 어찌 억지로 그리하신 것이겠습니까.
상을 당하여 예제를 다하였고 3년간 거친 식사를 하였으며 효심을바탕으로 충성을 다하였으니 공의 자연스러운 바였다. 혼인이나 장사지내는데 필요한 물품은 종척들이 모두의지하였으니 모두 효심에서 미루어 나온 것이라 공께서는 편안히 여기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공경하는 마음이일어나 변변치 못한 제물을 올립니다. 혼령이시여 계시다면 흠향하고 받아주소서.
부군의 함자는 흘이고 자는 구지, 호는 성은이다. 효성스럽고 우애가 깊으며 지극한 행실로 집안에서는 올바르게 행하시며 선조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켜 앞길을 밝히는빛이 있으셨다. 사람들이 효성과 우애로써 집안의 도리를 다한다고 칭하였으며 여러 차례 향선(鄕鮮)에 거론되었으나 끝내 이름을 널리 알리지는 않으셨다.
(아버지께서는) 가정 29년 경술 9월 9일 기해일에 태어나셨고 만력 42년 갑인 6월 27일 무신일에 돌아가셨다. 어머님은아버님과 같은 해 11월 7일 병신일에 태어나셨으며, 역시 아버님과 같은 해 4월 16일무술일에 돌아가셨다. 이에 그 해 12월 8일 병오일에 의성현 남쪽 오토산 태향쪽 언덕에 합장하였다.
後以掌令公參寧社原從推恩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 妣贈淑夫人
후에 장령공이 영사원종공신에 들게 되어 추은을 입어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에 추증되었고 어머님도숙부인으로 추증되었다.
14)鶴峯 金先生: 김성일을 가리킨다. 후대의 필사자가 선생이라 칭한 것이다.
15)장대서원:오봉(梧峰) 신지제(1562-1624, 의성 출신)를 경모하기 위해 세운 경현사에서 비롯되었으며, 1702년에 장대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장대(藏待)는 장현광이 써준 현판. 뜻을가지고 때를 기다리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