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을의 친족들은 높은 어르신들이적으나 서로 친하게 어울리며 심히 단단히 얽혀 왕래가 빈번하며 공경하시니 저희 자제들도 돈독하고 화목합니다. 어르신들부터철따라 나는 산물과 맑은 술을 가지고 분방하게 마음껏 노시면서 세속을 잊으셨고 손님을 오동나무 정자에서 맞이하셨습니다. 신발 벗고 버드나무 심어진 강둑에서 향기나는 깔자리 펴시고 잔씻어서 솔잎주를 서로 나누시느라 옥빛 잉어회 쟁반은옆으로 밀어두셨지요. 기쁨과 즐거움이 쓸쓸하고 쇠락한 모습으로 바뀌고 근심과 걱정은 서로 엉클어지니기뻐하던 어린아이가 늙고 병들게 되니 이유없이 후배들과 접합니다. 미루어 생각하니 어제처럼 찾아뵌 것이초 봄이었는데 짝을 잃으셨지요. 부고를 듣고 성화같이 달려왔으나 화창한 날은 가고 신비한 솜씨를 가진의사도 효험이 없습니다. 기별이 이르렀으나 꿈이며 사실이 아닙니다. 짝을잃고 외롭게 지내셨는데 이제 합장하게 되었습니다.
平生愼話語 孝友篤天倫
평생 말씀을 삼가셨고 효성과 우애는 천륜을돈독히 하셨습니다.
士習要扶正 鄕風擬挽淳
선비들의 습성은 바르게 지키려 하셨고향촌의 기풍을 잡아 순후하게 하셨습니다.
慈祥今已矣 影響見何因
자애롭고 상세히 살피심이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移殯從權厝 時辰遽浹旬
임시로 모신 곳에 따라 빈소를 옮기니시간이라고는 급작스러운 열흘 뿐.
恨余違紼列 淹病臥障䧬
한스럽게도 나는 상여모시는 대열에 낄수 없었으니 오래 병들어 앓느라 막혀 있었네요.
屬有恩除命 叨承馹召綸
마침 은혜롭게 제수되는 명을 받았는데외람되이 얼른 달려오라는 부름에
至今趍禁夜 不得出城闉
이제까지 느리게 움직이는 바람에 야간통금이라 성문을 벗어나지 못했네요.
緜酒서[忄斯]徐孺 幽明負伯仁
솜이며 술이며 겁먹은 아이를 진정시키고이승과 저승에서 백인에게 신세를 졌구요.
佳城龜叶吉 遠日25)歲占新
묏자리는 거북점이 길하게 나온 곳이라, 장례 치르는 날은 새롭게 점을 쳤네요.
合祔疑同室 山川卽近鄰
합장하여 같은 곳에 모신 것과 같으니산천은 가까운 곳입니다.
精靈安本宅 生死信回輪
정령은 본택을 편안히 여기시니 살고 죽음이다시 돌아옴을 믿습니다.
一邑哀榮極 諸節孝思純
온 읍이 슬퍼하니 지극한 영광이오 제반절차는 효성스러운 마음의 순수함이요.
琳琅暎永岳 才行冠成均
아름다운 옥은 영영 산에서 빛나고 재주와행동은 성균관에서 으뜸이었구요.
俱是人中秀 端宜席上珎
모두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나다 하였고높은 자리에 앉음이 마땅하다 하였어요.
積深期遠大 吾老意酸辛
깊이 쌓아 원대함을 기약하였으나 내가늙으니 뜻은 고생스러웠군요.
滾浪傷浮世 危道怵此身
흘러가는 물결이여 뜬 세상에 상심하니위태로운 말에 이 몸이 두려웠습니다.
循簷憐短日 引領望寒旻
처마를 빙둘러 해가 짧음을 애처로와 하며목빼고 찬 하늘만 바라봅니다.
楚些辭凄斷 長吟涕灣巾
혼령을 부르는 글이 처연하게 끊어지니길게 읊으며 눈물로 수건을 적십니다.
22)주무(綢繆) : 환란을 당하지 않도록 미리 조처하여 예방하는 것. 《시경(詩經)》 빈풍(豳風) 치효편(鴟鴞篇)의 “하늘에서 장맛비가 아직 내리지 않을 때에, 저 뽕나무 뿌리를 거두어 모아다가 출입구를 단단히 얽어서 매어 놓는다면, 지금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감히 나를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牑戶 今此下民 或敢侮予]”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3)배우자를사별한 뒤 홀로 슬퍼하며 지냈다는 말이다. 옛날에 계빈왕(罽賓王)이 난새 한 마리를 잡았는데, 난새가 우는 소리를 매우 듣고 싶었으나울게 할 방도가 없었다. 금으로 된 울타리를 쳐주고 진귀한 먹이를 주어도 시름시름 앓기만 하고 삼 년동안을 울지를 않았다. 그러자 계빈왕의 부인이 말하기를 “새는 자기 무리를 본 뒤에 운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거울을 걸어서 비치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그 말에 따라 거울을 걸어 주었더니, 난새가 거울에 비친자기 모습을 보고는 하늘에 사무치도록 슬피 울다가 숨이 끊어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후에 이를 ‘난경(鸞鏡)’ 또는 ‘고란조경(孤鸞照鏡)’이라 하여 금슬 좋던 부부가 배우자를 사별(死別)한 뒤 쓸쓸하게 지내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太平御覽 卷916 鸞鳥詩序》
24)연진검합(延津劍合) 또는 연진지합(延津之合)이라 하여 부부가 사후에 서로 무덤을 달리했다가 합장하는 경우에 주로 쓰이는 말이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25)遠日: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무릇 날짜를 점칠 때에는 열흘 밖의 날을 ‘먼 어느 날’이라고 하고, 열흘안의 날을 ‘가까운 어느 날’이라고 한다. 상사에는 먼 날을 먼저 점치고, 길사에는 가까운 날을 먼저 점친다.〔凡卜筮日 旬之外曰遠某日 旬之內曰近某日喪事先遠日 吉事先近日〕”라고 하였다. 따라서 ‘원일(遠日)’은 바로 상사(喪事)와관련된 날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