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일록(倡義日錄)」은신적도(申適道, 1574∼1663)의문집인 『호계집(虎溪集)』에 수록된 일기이다. 『호계집』은 6권 3책의목판본으로, 후손 돈식(敦植)이 집안에 대대로 수장되어 온 유고 등을 수습·편차하여 류필영(柳必永)에게 서문을, 곽도(郭鋾) 등에게 발문을 받아 1919년 간행한 문집이다. 「창의일록」은 이 문집 권4에 43면 정도의 분량으로 실려 있다.
「창의일록」은 1636년 12월 20일부터 이듬해 2월 9일까지의기록으로,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저자가 의병장이 되어 의병을거느리고 용인까지 출정했다가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일을 기술한 일기이다.저자는 일기에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기술하였는데, 특히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자신이 의병장으로추대되어 의병을 이끌고 출정하는 일, 각 고을의 의병들이 속속 출정하는 일, 의병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고생하는 일, 관군과 의병들이 청나라에게패배한 사실, 포로가 된 조선인의 참혹한 실상, 남한산성의참혹한 실상, 청나라와 화친하는 일로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 화의가성립되는 과정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신적도의 자는 사립(士立), 호는호계(虎溪), 본관은 아주(鵝洲)이며, 흘(仡)의 아들이다.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수학하였다. 1606년 식년시 진사에 입격하였다. 1627년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의병을 규합하여 북상하던 중 강화가 이미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척화의 상소를 올리고 돌아왔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의병을 이끌고 광주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으나, 임금이 청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산(鶴山) 미곡(薇谷) 아래에 채미헌(採薇軒)을 짓고 강학을 하며 여생을 마쳤다.
「창의일록」은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저자 신적도가 의병장이 되어 의병을 거느리고 출정하면서 당시의 전쟁 상황과화의의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병자호란 및 의병활동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