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벼슬 이어진 고가의 자손으로 / 簪纓舊家世 빙월 같은 좋은 심성 지니셨지 / 冰月好襟情 약관에 이미 명성이 자자했고 / 弱歲蜚英譽 중년에는 작은 이름을 차지하였지 / 中年占小名 벗들도 그 우뚝한 도량을 인정하여 / 朋儕推偉度 조만간 붕정만리 오르리라 여겼었지 / 早晩展遐程 벼슬은 평소의 바람이 아닌지라 / 袍笏非前分 숲과 동산에서 좋은 맹약을 맺었지 / 林園有好盟 형문에 한번 누워 오래도록 / 衡門一臥久 뜬세상 온갖 인연 가볍게 보았네 / 浮世百緣輕 욕심이 적어지니 천기가 움직이고 / 慾淺天機轉 정신이 한가하니 도미가 형통하네 / 神閒道味亨 정기는 늙어 갈수록 강건해지는데 / 精華老康健 세월은 부질없이 흘러가 버렸네 / 歲月坐崢嶸 재상이 산중에 거처하는 듯하였고 / 宰相山中在 신선이 지상에서 거니는 듯하였네 / 神仙地上行 성대에서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 不妨明世棄 길이 태평 시대의 백성이 되었네 / 長作太平氓 채소밭에 물 주는 것도 경제의 일 / 灌圃還經濟 안녕을 물려주니 어찌 욕되게 여기랴 / 遺安詎辱榮 애초에 바깥 명예 구한 것 아니로되 / 初非要外譽 화려한 명성이 절로 자자하였네 / 自爾藹華聲 향리의 무거운 명망을 받으시니 / 望被鄕鄰重 사람들은 비루한 생각이 사라졌네 / 人消鄙吝萌 드시는 것도 다행히 탈이 없으셨는데 / 餐飧幸無恙 들려오는 부음에 홀연 놀라네 / 消息忽堪驚 벗들의 애통한 마음 절실하니 / 擧切朋知痛 경앙하는 정성을 어찌 금하랴 / 那勝景仰誠 붉은 명정이 먼 길을 열어 / 丹旌啓遠道 한낮 즈음에 분묘를 닫았다네 / 白日閉佳城 모습이 멀어졌음을 깨닫고 나니 / 已覺儀刑遠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어찌하리오 / 其如涕泗傾 처량하게 해곡을 부르면서 / 凄凉歌薤曲 무덤을 향해 통곡하네 / 痛哭向蒿塋
[주-D001] 퇴간(退澗) 신 진사(申進士) :
조선 후기의 학자인 신렴(申濂, 1657~1736)이다. 자는 학원(學源), 호는 퇴간노인, 또는 사곡만은(沙谷晩隱)이며,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효성이 깊고 학문에 힘써 독행(篤行)으로 여러 번 어사(御史)의 천거를 받았다. 권두경(權斗經), 이재(李栽)와 교유하였다. 대산의 외삼촌인 이지훤(李之烜)의 장인이다. 《訥隱集 卷15 退澗處士申公行狀》
[주-D002] 빙월(冰月) :
빙호추월(冰壺秋月)의 준말로, 얼음으로 만든 호리병에 맑은 가을달이 비친 것과 같이 깨끗하고 고매한 인격을 가리킨다. 《송사(宋史)》 권428의 “등적(鄧迪)이 일찍이 주희(朱熹)의 부친인 주송(朱松)에게 이동(李侗)의 인격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원중(愿中)은 마치 빙호추월과 같아 한 점 티가 없이 맑게 비치니, 우리들이 따라갈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라는 내용에서 나왔다.
[주-D003] 작은 이름을 차지하였지 :
과거 시험 중에서 문과(文科)의 예비 시험인 소과(小科)에 합격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소과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주었다.
[주-D004] 형문(衡門) :
나무를 가로질러 만든 보잘것없는 문으로,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은자(隱者)의 거처를 뜻한다. 《시경》 〈진풍(陳風) 형문(衡門)〉에 “형문의 아래에서, 한가히 지낼 만하다.〔衡門之下 可以棲遲〕”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D005] 안녕을 물려주니 :
원문의 ‘유안(遺安)’은 자손에게 덕스러운 기풍을 물려주어 그들로 하여금 담박하게 지키면서 무사 안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후한 때의 은사 방덕공(龐德公)이 현산(峴山) 남쪽에서 밭을 갈고 살면서 성시(城市)를 가까이하지 않자,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찾아와서 “선생은 시골에서 고생하며 지내면서도 벼슬해서 녹봉을 받으려 하지 않으니, 무엇을 자손에게 물려주려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방덕공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위태로움을 남겨 주는데 나는 유독 안녕함을 물려주니, 비록 물려주는 것이 똑같지는 않으나, 물려주는 것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世人皆遺之以危 今獨遺之以安 雖所遺不同 未爲無所遺也〕”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주-D006] 해곡(薤曲) :
해로곡(薤露曲)이라고도 하는데, 흔히 사람이 죽었을 때 부르는 만가(挽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고금주(古今注)》 중권(中卷)에 “〈해로〉는 사람이 죽었을 때 부르는 음악이다. 전횡(田橫)의 문인에게서 시작되었는데, 전횡이 자살하자 문인들이 슬퍼하여 그를 위해 〈해로〉와 〈호리(蒿里)〉 2장의 비가(悲歌)를 지었으니, 사람의 목숨이 풀잎에 맺힌 이슬〔薤露〕같이 쉽게 사라지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