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시는 성정의 순화나 외교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문인의 유대를 다지기 위한 모임에서 다른 문인들과 소통하고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 지성 의 산물이었다. 타자의 시에 화답하는 양식의 酬唱詩1)는 문학적 역량과 대상ㆍ장소ㆍ상황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권면ㆍ경계ㆍ교류ㆍ유대 확인ㆍ고양감 형성ㆍ역량 과시 등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 중기의 수많은 문인 중에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梧峯 申之悌(1562-1624)는 퇴계ㆍ남명 학맥의 문인들과 두루 어울리며 많은 수창시를 남긴 인물이다. 그의 학맥과 사승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에 퇴계 학맥의 金彦璣에게 배우고 金誠一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퇴계 학맥과 학풍을 조금 달리 했던 張顯光을 종유하고 남명 학맥의 학자와 교유하는 등, 영남의 여러 학풍을 흡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신지제의 부인 趙氏가 남명 학맥이 주류를 이루었던 咸安 지역 출신이고, 또 신지제가 창원에서 부사로 재직하던 시기에 자연스럽게 낙동강 하류 일대의 문인들과 어울렸다는 사실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역 문인의 소통은 대개 해당 학맥을 구성하는 문인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지만, 문학 활동은 비교적 작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 따라 다각도로 이루어지며 수창 방식도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신지제는 이황의 급문제자인 金誠一을 스승처럼 여겼고 金富倫과 趙穆 등을 학맥의 웃어른 으로 따랐는데, 梧峯集에서 鄭逑ㆍ張顯光의 문인, 呂大老ㆍ朴瑞龜ㆍ李安訥 등의 시에 수창한 작품들을 통해 그의 문학적 교류가 특정 학맥이나 직위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역의 사상 연구도 최근에는 영남학파를 퇴계와 남명의 두 거대 학맥으로 양분해 왔던 경향에서 탈피하여 지역 유학들의 차별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세분화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지역 문인들의 폭넓고 활발한 교류와 학파적 유대, 문학 활동 또한 지역 유학의 세분화된 논의를 반영하여 살필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금까지 신지제의 생애와 업적을 토대로 가계와 학문 경향, 전란기 의병활동을 다룬 연구가 이루어졌고, 문학 영역에서는 시를 중심으로 檜山雜詠 에 나타난 정서, 교유 양상을 다룬 연구가 진행되었다. 梧峯集에 나타난 신지제의 수창은 次韻(步韻)ㆍ用韻ㆍ分韻ㆍ呼韻ㆍ點化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창 대상은 해당 학맥의 문인에 구애되지 않아 학맥을 뛰어넘는 교류의 일면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신지제가 개별적으로 차운하거나 시회에서 남긴 시를 학맥, 개별 관계망, 수창 양상이라는 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살피려 한다. 지역 유학에 대한 사상 연구의 논의를 반영하여 학맥과 관계망을 고찰하고, 梧峯集에 실린 交遊詩 중 次韻(步韻)ㆍ用韻ㆍ分韻ㆍ呼韻ㆍ點化 등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다루면서, 영남 학맥의 교류와 신지제의 시문학에 나타난 다양한 수창의 양상을 엿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