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梧峯) 신지제(申之悌)(1562∼1624)는조선 중기에 전쟁의 참상을 몸소 체험하였고,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한시 작품을 남겼던 문인이다. 그의 생애는 연보와 행장 및 시기별로 편집된 오봉집(梧峯集)을 토대로, 출생부터 문과에 급제하기까지의 수학기(修學期), 임진.정유(壬辰.丁酉)의 양란(兩亂)을 겪으며 내직과 외직을 오갔던 전난수습기(戰亂收拾期), 지방의 창원에서 부사로 재직했던 창원부사재직기(昌原府使在職期), 체임 후 고향에 물러난 은거기(隱居期) 등의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신지제는 예안(禮安)에서 현감으로 재직할 때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겪고 의병을 일으켰으며, 정유재란(丁酉再亂)때는 전란을 수습하기 위해 武官을 겸직하여 중앙과 지방을바삐 오갔다. 이후로는 고향에 물러날 때까지 창원에서 부사로 재직하며 내직으로 복귀하지 못하였다. 평온하지 않았던 시국에 이어서 변방을 전전해야만 했던 신지제는 창원 부사 재직기의 작품에서 많은 울분과 쓸쓸함을드러내었다. 이 시기의 시 작품은 회산잡영(檜山雜詠)이라는 편명으로 오봉집(梧峯集)에실려 있으며 문집에 실린 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회산잡영(檜山雜詠)에는 재능을 가지고도 포부를 펴지 못하고 늙어가는 낙척(落拓)한 처지에 대해고뇌하고 체념하는 문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으며, 이울울(鬱鬱)함은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기 전까지 그가 남긴시의 주된 정서로 자리 잡게 된다. 신지제는 시를 통해 변방생활 중에 받았던 비방과 폄훼에 대한 울분을달래고, 정치적으로 소외된 굴원(屈原)과 왕궁에서 쫓겨난 왕소군(王昭君)에자신을 가탁하여 정치적 이상을 구현할 수 없었던 현실과 불우한 처지를 드러내었다. 회산잡영(檜山雜詠)의 울울(鬱鬱)한 작품들은 불합리한 현실과 세태에 대한 신지제의 울결(鬱結)이 그의 시문학으로 발현된 것으로, 울결을 표출하는 양상은 개인적인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전란을 겪은 뒤 피폐한 삶을 사는 백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관료로서가졌던 책임과 회의를 시에 담아내었으며, 과거 임진.정유의전란 때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했던 장수들의 부조리를 시로 풍자하기도 하였다.
1. 머리말
한국 한시사(漢詩史)에서 조선 중기는 전란에도 불구하고 역량이 뛰어난 한시 작가들이 대거 출현하여 활발한 문학 활동을 통해 시단(詩壇)의 번성을 주도하였던 시기라 말할 수 있다. 오봉(梧峯) 신지제(申之悌)(1562∼1624)는 이 시기에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을 겪으며 전란을 수습하고 문인으로서 많은 한시 작품을 남겼던 인물이다.
그는 28세에 과거에서 대책문(對策文)으로 장원을 차지한 뒤 내직으로 있을 때는 동향(同鄕)의 관료들에게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고 깊은 우의를 다졌으며, 외직으로 나가서는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고 민심을 수습하고자 하였다. 지방관을지내면서 선정을 베풀고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전란 후 창원 부사 재직 시에는 명화적(明火賊)을 체포하고 경내를 안정시킨 공으로 자급(資級)을 올려 받았다.
어린 시절에 퇴계 학맥의 김언기(金彦璣)에게 배우고 김성일(金誠一)을스승으로 모셨으며, 퇴계 학맥과 학풍을 조금 달리 했던 장현광(張顯光)을 종유하고 남명 학맥의 학자들과 교유하는 등, 영남의 여러 학풍을흡수하였다. 또 시강원 문학겸 지제교를 지내면서 국가의 공적 문장을 담당하여 관각 문학에 탁월한 역량을드러내었으며, 당대의 저명한 문인뿐만 아니라 師友나 지방관 및 하급 관료들과도 시문을 폭넓게 주고받으며개인의 서정을 토로하는 순문학 또한 많이 남겼다.1)
전란 속에 의병 활동을 하고 민심을 수습하였으며 지방 풍속을 교화한 뛰어난공적을 남겼고, 수많은 문인들과 활발하게 시적 교류를 나누며 훌륭한 문예적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연구는 신지제의 연보를 중심으로 생애 및 학문 경향을 살핀 연구2)와문중의 고문서를 토대로 가계와 사회ㆍ경제적 기반을 살핀 연구3)만 진행되어 있다.
신지제의 문집인 오봉집(梧峯集)은 본집 7권 4책과 별집 1책으로 되어 있다. 본집 중에1∼5권이 한시(漢詩)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이어간행된 별집에도 적지 않은 수의 시가 실려 있다. 전체 문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시449제(題)를 통해서 신지제의문학적 재능이 시를 중심으로 발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업적ㆍ사상ㆍ교유 및 관계망 등과 더불어그의 문학 작품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글은 신지제의 시 문학을 살피기 위한 연구로서, 먼저 연대순으로 정리된 오봉집(梧峯集)의 구성을 참고하여 그의 생애를 현실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 경계를 이루는 구간을 중심으로 재정리해 보려 한다. 이를 토대로 문집에 실린 한시 중에 가장 많은 작품이 지어진 시기이자 작가 의식이 뚜렷하고 일관되게 표출된창원 부사 재직기의 작품을 살핌으로써, 시에 나타난 신지제의 사유 및 정서 등을 구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