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읍,귀 양파에서 수차 파보를 간행하였으나시조문제로 단 합된 大同譜를 발간하지 못하였음은 자손된 도리로서 부끄럽기 그 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의 시조가 누구인가가확실히 확인되고 있고 특히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우리 아주신씨는 토성으 로서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등 그밖의 많은 역사적인 고증에서도 우리 아주신씨는평산신씨와는 전혀 무관한 우리만의 독자적인 상 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아신이 평산신씨의 분파로 근거를 삼는화해사전이란 책은 그 내용이 위서라는 사실을 국사편찬위원회는 물론 역사학계에서도 증명해 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종회의 몇몇 사람들이 화해사전의내용에 따라 평산신씨계의 분파로 고집하고 있는 것은 족보 사대주의 사상에 물든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平山申氏大宗會의 公文에서는「大宗 제74호 W72년 7월 27일字 내용중 제2항에서 위 修譜特別審議委員會는 이 件을 上程하고 진지한 심의를 거듭하였으며, 더욱 公正을 기하는 方案으로 大韓民國 學術院長 이병도 박사를 비롯하여당대 최고의 史學者인 金庠基, 申奭鎬, 梁柱東, 任昌淳 등 권위자에게 화해사전에 대한 감정을 의뢰하기로 결정되었음.」하는것과 「제3항에서 1972년 10월 7일字로 제51차常任有司會에서 위 감정 결과가 보고되는 동시에 감정원본이 제출되었던바 내용은 한결같이 화해사전이 위작이라는 것이었음.」이란 내용으로 보고 되었습니다.
「제4항에서 1973년 2월 25일字로위 특별심의위원회는 화해사전에 의거한 영해,울산 및 아주신씨계의 入錄은 정당하지 않는 것으로 인정되었으며 이번 修譜에 있어 이를 삭제 시정하기로정기총회에서 議決하였음.」이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서 平山申氏 대동보에는 淑과 益休,益保는게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上記에서 보듯 平山申氏大宗會에서 鵝洲申氏는 歷史的 根據에 의해 삭제한 사실에대하여 正當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잘잘못을 따져 항의 하여야 하나 본 대종회의 누구도 항의 한번 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평산신씨 사람들을 찾아가구걸하는 식의 계보 끼워넣기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로 이런 행위는 분명 아주신의 명예를 먹칠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平山申氏와 혼인관계를 가진 사실 기록을 보면 十四世 虎溪(適道) 先祖의 셋째 따님이 平山申氏의 申命元집안에 또 十五世 坫자 조상의 둘째 따님이 平山申氏 申邦彦의 집안에 시집간 사실이 있는데도우리 아주신씨가 평산신씨와 同系라는 말은 도대체 언어도단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華谷派 十五世 竪자조상의 配위가 貞夫人 平山申氏 며 十七世 澄자 조상의 配위도 平山申氏라 보첩에 기록되어 있고 判官派의 十七世 淵자 조상의 配위도 平山申氏로 엄연히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데도 鵝申이 平申系라 주장한다는 것은 同姓同本의 禁婚律法을 가졌던 우리先代의 傳統을 훼손한 것이 되었으며 他姓氏의 門中을 대하기가 심히 수치스럽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 鵝洲申氏의 족보가 처음으로 干桁된 것은 距今 160년전 순조 19년(1819년)의일이며 이때 간행된 족보를 己卯譜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己印譜는 鵝洲申氏 전체의 족보가 아니었고 果川公派에서주장하여 만든 安東派譜였습니다. 이 파보에서 처음으로 우리의 상계를 考譜錄에 表示한 바와 같이 당시公州人 金魯定이가보여준 것에서 따랐고 여기서 도와공 신정주씨가 제시한 계보 및화해사전을 참고하였던 것으로 여기에서 壯節公을 元祖로 그 아래 11대손 益字休字를 中始祖로 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파보 간행시읍,귀 양파에서 논난이 실로 많았습니다. 앞서 오래전 宣祖時代의 梧峯家牒과 仁祖時代의 懶齋家牒을 비롯하여아주신씨 각 가정에 보존하고 있는 조선 순조 이전의 옛날 가첩에는 모두 戶長公 英字美字를 一世로 하였고,특히 鵝洲申氏 최초 譜로 밝혀진 1817년 목판인쇄본 鷹巖實蹟에도 英字美字 一世로 기록하고 있으며,英祖時代에 편찬한 文獻備考와 典故大方을 비롯하여국가에서 편찬한 모든 典籍에도 아주신씨의 시조를 英字美字로 기록하였음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분명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주신씨에서는옳지 않은 상계오류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특히 대종회에서모든 내용을 뻔히 알면서도 신익휴를 시조로 하여 대동보를 만들겠다 하는 데는 개탄스럽기가 그지 없습니다.
아주신씨가 평산신씨계임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진지하게논의를 해보면 英字美字시조를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자기의 직계부•조께서 이미 해놓은 (예 : 비석,문적 등) 것을 이제 와서 후손된 우리들이 고칠 수 있겠느냐 하는 말을 했습니다. 歷史는 전문학자들에 의해 기록되는 것으로 譜學도 마찬가지로 전문가에 의해 연구되고 오류가 있으면 바로 잡는것으로 이에 따라 훌륭한 대동보가 나오는 것 입니다.
평산신씨의 대종회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제대로아는데서 우리 아주신씨를 평산신씨계가 아니라고 결의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아주신씨도 때는 늦었지만한점 부끄럼 없도록 시조를 바로 세워 올바르고 훌륭한 대동보를 작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附言해서 대종회 몇몇 간부가 평산신씨대종회 사무실을찾아가 아주신씨가 평산신씨계이니 지금이라도 그들 대동보에 끼워 넣어 달라고 애걸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닙니까? 문중제위는 현혹되지 말기를 심심당부드립니다. 諸 派宗中의 諸位께서는 本誌의 내용을 정독하신다면 우리의 시조바로세우기가 실로 진실되었음을 共感하실 줄 믿습니다. 본지 발간에 즈음하여 인사말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