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사적』의 필사 연도와 『울릉도』의 ‘우산도’ 해석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변석(辯析)
유미림 (한아문화연구소)
동북아역사재단동북아역사논총동북아역사논총 제64호
2019.0649 - 89 (41 pages)
『울릉도 사적』을 둘러싼 논란은 필사 연대를 둘러싼 것이고, 『울릉도』를 둘러싼 논란은 ‘우산도’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다. 『울릉도 사적』은 기존에 신광박 필사본만 알려져 있었지만, 이 외에 다른 두 가지가 더 있음이 새로 밝혀졌다. 신광박 필사본이 『절도공 양세 비명』에 실려 있으므로 신광박이 필사했다고 하는 임인년을 1722년으로 추정한 필자의 설은 잘못되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신광박이 필사한 해가 1782년임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이것이 『울릉도 사적』의 필사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절도공 양세 비명』에는 『울릉도 사적』 외에도 『양대 비명』과 『사제문』이 실려 있다. 『울릉도 사적』에는 『양대 비명』과 『사제문』에 없는 열두 글자가 더 있으므로, 세 가지 문서가 같은 해에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울릉도 사적』을 필사한 해와 『절도공 양세 비명』을 편집한 해가 다를 가능성이 있다. 박세당이 기술한 울릉도와 우산도 인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인식과 다름이 없으므로 우산도를 독도로 해석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박세당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술된 “一說于山鬱陵本一島”라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은, 그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1도’설을 부정했음을 의미한다. 필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보인다’고 한 내용과 박세당이 (우산도가) ‘보인다’고 한 내용의 차이를 밝혀, 박세당이 ‘보인다’고 한 것의 의미가 울릉도에서 우산도가 보인다는 것을 의미함을 논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