影印本(木板本). - 서울 : 景仁文化社, 1994. - 【韓國歷代文集叢書(894-900)】.
7冊 : 23 cm.
조선 말기의 학자인 장석영의 시문집이다. 1851(철종 2)년 10월 24일에칠곡군 약목면 각산 동에서 전형조참판 장시표(張時杓)의 아들로태어나 조선 후기 성리학의 거두 이진상에게 사사하였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 지방보상 회장으로활약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전국 유림들의 독립청원서를 초안하고 성주 장터 만세시위에 참가하였 다가 옥고를 치렀다. 1905(광무 9)년에 을사조약을 맺게 되자 이승희․곽종석 등과 함께 유생 3백여 명을규합하여 ‘청참5적소(請斬五賊疏)’를 올리고 1907(융희 1)년에거국적인 국채보 상운동 때, 지방보상 회장으로 추대되어 금연 운동과 의연금 모집을 주도하였다. 1912년 3월 3일∼6월 9일 동안 만주와 노령(露領)지역 일대를 순력하며 독립운동 적지를 물색하고 한인 이주 실상을 견문․기록한 『요좌기행(遼左紀行)』을 저술하여 귀중한 독립운동 사료를 남겼다. 『요좌기행』에서는 이주적지를 요동 쪽의 서간도(西間島)로 보았다. 1919년 들어 3․1운동 과는 별도로김창숙 등 전국의 유림들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맞아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내기로 하였다. 청원서는 파리․총독부․국내 발송용 등 5개 본으로 나누어, 장석영은 총독부 전달용의 초안을 작성하고 유림 대표 137명의 1인으로 서명하였다. 한편 전국으로 번진 만세운동에도 적극 참가하였다. 당시 성주군 월항면 안포동에 거주하던 장석영은 성주의 유림들과 함께 기독교도와 연대하여 성주 장날인 4월 2일에 거사키로 하였 다. 당일오후 1시 시장에 모인 군중들의 만세시위가 고조되자 다급해진 경찰이 발포하여 사상자가 생기고 유림들과함께 장석영도 체포되었다. 조사 중에 파리장서 내막이 알려졌으 나, 노출된곽종석과 장석영. 송준필 등 16명만 재판에 회부되고 전모는드러나지 않았다. 같은 해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장석영은 징역 2년을 언도받고복심 에 공소하였다. 다음 달에 상해에서 국내로 발송한 독립청원서가 각 향교에 도착한 것이 발각되면서서명인 전원이 수감되었다. 이 중에서 곽종석은 병보석 되었으나 8월 24일 순국하고, 김복한(金福漢)과 하용제(河龍濟)는 옥사하였다. 그 외 인사들은 일본의 회유책으로 미결 3개월간의 옥고 뒤,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같은 해8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장석 영 등 4인은증빙 불충분으로 원판결을 취소하고 무죄가 되었다.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 을 추서하였다. 1999년 3월 ‘회당장선생사적비(晦堂張先生事蹟碑)’를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세우고, 매년 광복절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문집은 1932년 후손 익원(益遠)이편집, 간행하였다. 문집 중 시는 기울어 가는 나라의 형세를바로잡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불우의 한을 시속에 담아 표현한 것이다. 「야회(夜會)」 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나 다정하고즐겁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로 경계하는 마음이 생기는 까닭을 애써 잊으려 한다 하였고, 「도한강(渡漢江)」과 「송경회고(松京懷古)」 5절에는 나라를 잃은 슬픔이 절실하게 묘사되어있다. 서(書)의「상한주선생(上寒 洲先生)」․「상허후산(上許后山)」은 선배인 이진상과 허유에게 학문의 방법을 질의한 것이고, 「답이계도(答李啓道)」․「답이공윤(答李公允)」은 제자들이 물어온 경전․성리․예절․시사 등에 대하여자세히 답한 글이다. 「소학강회시발문(小學講會時發問)」은 고산서당에서 『소학』을 강의할 때 어려운 대목을 골라 스승에게 질의한 내용이다. 「정자논성설해(程子論性說解)」와「주자대전기의략(朱子大全記疑略)」은 송대(宋代)의 대학자 정이(程頤)와 주희의 성리학에대하 여 자신의 견해를 보충하여 설명한 것이다. 「호락설변(湖洛說辨)」은 당시 성리학에 대한 호당 과 낙당의 논쟁에 대하여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와 심즉기(心則氣), 미발하였을때 기질성의 유무,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등 견해 차이를 긍정 또는 부정하면서 절충의 형식을 취하여 설명하였다. 「변사교설(辨邪敎說)」은 모든 주민이 평등하다고 한 천주교를 반박하여 아비도임금도 없는 오랑캐의 무리라고 배척하였다. 이밖에 지구가 둥글며 회전한다는 주장을 반대 한 「변지구원전설(辨地球圓轉說)」과 성(性)은 스승이고 마음은 제자라고 한 말을 변론한 「성사심제변(性師心弟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