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卷5冊 : 四周單邊 半郭 22 x 15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 31 x 21 cm.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학자인 신집의 시문집이다. 상주출신이며 주부 경남(慶男)의 아들이다. 정경세에게서 배웠다.1606(선조 39)년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그에앞서 이언적을 두둔하는 유생(儒生)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성균관전적 등을 지냈으나 광해군 때 대북(大北)의 독주 가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명승지를 유람하였다. 1627(인조 5)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원 도도사에 임명되어 군사를 모았고, 1636년병자호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켰다. 1628년 류효립 (柳孝立)의 모반을 진압한 데 참여하여 영사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으며, 벼슬 이 사복시정에 이르렀다. 성리학은 물론, 의약(醫藥)․복서(卜筮)․음양(陰陽)․지리에 두루 밝았다.
이 문집은 1750(영조 26)년 7세손홍좌(弘佐)가 간행하였다.문집 중 「점마시진폐장(點馬 時陳弊狀)」은 동래부사로서역마와 군마를 사육하는 동래마장에서 말을 점고할 때 생기는 폐단을 지적하여 그 시정을 건의한 글이다. 「관향록(管餉錄)」은 1687(숙종 13)년 정묘호란 때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각 지방의 의병수, 군량의 수량 및 운반과정, 무기의 종류 등을 적고, 조정의 명령과 방백의 장계 등을 상세히 기재하였다. 정묘호란의 연구에일단의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는 의약, 복서(卜筮), 지리, 천문 등에통달하였고, 스승 정경세와 의례 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하였다. 상례(喪禮)와 복제(服制)에 관한 문목이 『우복집(愚伏集)』에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