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석우[申錫祐(1816~1881)] :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덕문(德文), 호는가헌(可軒)이다. 일찍이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한 후로 황조산(黃鳥山) 아래에 봉정(鳳亭)을짓고 숨어 살았다. 대원군(大院君)이 영남 유람 길에 찾아와서 의기가 서로 맞아 시 를 지어 공에게 주기도 하였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일어나자 공은 낙파상공(洛坡相公;柳厚祚)을 호동사제 (壺洞私第)로찾았으며 낙파공이 반겨주었으나 "이곳이 초야의 선비가 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하여 돌아왔다. 낙파 공의 추천으로 경상도 연보전도유사(捐補錢都有司)가 되었으며 1876년(고종 13) 일본과의 수호조약이 체결되자 최 익현(崔益鉉), 홍재학(洪在鶴), 황재현(黃載顯)과 함께상소, 불가함을 논하였다. 문집으로 가헌집(可軒集)이 있다.
2) 천년 석탑 :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국보 제77호 탑리오층석탑을 말한다. 일명 조문탑, 수원탑, 산운탑이라고도 한다.
3) 거문고 소리 : 원문 금슬(琴瑟)은거문고와 비파를 말한다. 거문고와 비파가 서로 어울리는 모양처럼 잘 어울리는 부부 사이의 두터운 정과사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임금은아무까닭 없이 옥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으며, 대부는 아무 까닭 없이 걸어 놓은 악기를 치우지 않으며, 선비는 아무 까닭 없이 금슬을 철거하지 않는다.[君無故玉不去身 大夫無故不徹縣士無故不徹琴瑟]”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