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찬자 조종운의 자는 백농(伯農), 호는 송창(松窓), 본관은 풍양이다. 이조참의에추증된 조척(趙滌)의아들로 조부 조수륜(趙守倫)은 이이·성혼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숙부 조속(趙涑)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조속은 학식과 서화에 대한 재능을 바탕으로 당시 사림에서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더욱이 그는 해박한 보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선대와 그 외가의 사적을 정리한≪사선록思先錄≫을 남겼는데,이 저서는 조종운이 ≪씨족원류≫를 저술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조종운이 씨족원류를 저술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실전한 선대의 세계를 회복하는데 있었다. 이런 계기 속에서 그는 다른 성관의 계보에까지 천착하게 되면서 통합보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씨족원류를 남기게되었다.
씨족원류 이전에도 양성지(梁誠之)의 ≪해동성씨록海東姓氏錄≫과 같은 통합보가 있었지만 체제와 범위에 있어 씨족원류에 비견될 수 없었다.
씨족원류에는 17세기 중반까지의 조선의 대성·망족을 망라되어있는데, 전주이씨를 위시하여 대략 540여개 성관이 수록되어있다.
성관의 기재 순서는 종성인 전주이씨를 필두로 하여 이씨·박씨·김씨·정씨·조씨·정씨·송씨·안씨·왕씨·허씨·남씨…순이며, 각 성씨의 기재 순서는 당시의 가격 (家格)과 일정한 관련성을 지니면서 망족일수록 앞에 수록하였다.
각 성관의 세계를 기록함에 있어 맨 모두에 큰 글씨로 성관을 표기한 다음 그 아래에 세주 형태로 관향의별칭 또는 이칭을 기록하였다. 대략 한 면에 족도 형식으로 6-7대가수록되어 있고, 보도(譜圖) 는 구획되어 있지 않다.이는 보도가 정연하게 구획된 후기의 ≪만가보萬家譜≫. ≪청구씨보 靑邱氏譜≫ 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자녀는 대부분 출생순에 따라 수록되어 있고, 수록 대수에 있어서도본성과 외파의 차이가 거의 없다. 각 인물의 주기(註記)는 개인에 따라 상략이 심한 편으로 비교적 현달한 인물은관직, 묘소위치, 배위사항이 기재되어 있고, 그 나머지는 관직만 간단하게 기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첩될 경우에는초첩의 맨 하단에 견하(見下)라고 표기했을 뿐 자표(字標)는 매겨져 있지 않다.
제한된 지면에 많은 가계를 수록하느라 체제가 정연하지 못하고 각 인물의 주기가 지나치게 세필(細筆) 로 쓰여진단점은 있지만 파악이 가능한 가계를 최대한 수렴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
더욱이 이 씨족원류는 통합보의 전형이 되어 백씨통보(百氏通譜), 만가보(萬家譜), 청구씨보(靑邱氏譜), 계행보(系行譜) 등 제 통합보의 출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문화사적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풍양조씨문헌총서(豊壤趙氏文獻叢書)』
·『풍양조씨세록(豊壤趙氏世錄)』
「松窓趙從耘과 그의 氏族源流」(吳江原, 『春川의 世居氏族 豊壤趙氏淮陽公派硏究』, 1997)
그는 14대 선조 40년(1607)에 졸하였는데 관직에 있으면서 틈틈 이 각 성씨의계보관계를 연구하고 자료들을 수입하는 일을 많이 하였다. 그가 편저한 저서가 씨족원류로 그가 이 책을낼 때는 각 성씨의 문중에서 족보편찬이 미미했을 때였다. 문중의 족보보 다 그 종중의 사람들 개개인이갖고 있는 가첩(家膜)이 그때까 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것을 듣고 복제하여 엮은 것이 그의 씨족원류였다.
그가 이 책을 편저하게 된 동기는 그의 시조에 관한 기록과 문중의 세대(世代)가 실전(失傅)된 것을 보고 찾기로 결심한데 있었 다. 또한 그가 조상계보에 대한 관심과영향을 받은 것은 창강조속 (槍江趙液)에게 있었다.
창강조속은 16대인조 때 유명한 화가(書家)이며 당시 보학(譜 學)의 대가(大家)로 알려졌던 사람이다. 이 창강조속은조종운의 숙부(故父)였다. 씨족원류의 내용을 보면 540여성씨문중의 계대 (系代)가 수록되었음을 보는 것이다. 방대한 많은 성씨의 계보(系 譜)인 것이고 각성씨의 시조를 비롯해서 대개 6세(☆世)정도까 지 기록하였다.
이 씨족원류가 세상에 선보이고 나서 그간 자기네 시조를 비롯 하여 상계(上系)의 세대(世代)를실전(失傅)하였거나 모르고 있 던 성씨의 문중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찾아 보는 일이 많았다. 이 씨족원류에는아주신씨의 상계 기록도 있다.
조종운(趙從耘,1607-1683)의 씨족원류(氏族源流)는 당시 조선사회의 540여문중의족보, 가승, 계보 기록을 필사하여 편찬한 가장 신뢰도가높은 종합계보서이다. 1680년(肅宗 6)에 선원록이정청 (璿源錄釐正廳)에서편찬한 "선원록이정청의궤(璿源錄釐正廳儀軌)"에 씨족원류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이때까지는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아주신씨의 기록이 상당히 자세하며, 대부분의 다른 신씨들계보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