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당시 거제도 기록물 중에, 거제도본관을 가진 반(潘)씨, 신(申)씨, 빈(賓)씨에 대한, 명계(明溪) 김계윤(金季潤1875∼1951) 선생의 자료가있어 그대로 옮겨 본다. 실제 집안의 족보나 유적 그리고 기록물과는 그 차이가 많이 발생할 수 있으리라, 충분히 짐작은 간다. 그러나 약100년 전, 거제시 연초면 명동리에 태어나 고향에서 사망 때까지 평생 유학자로 전국을누볐던 김계윤(金季潤) 선생의 기록 또한 무시할 사항이 아닌지라, 번역해게재함을 알리니 널리 ❉양해❉ 바란다. 과거 약 600년 전까지는 거제도가 관향인 성씨가 20개가 넘었다. 현재는 모두 사라지고, 공식적으로 반(潘)씨, 신(申)씨 두 성씨만 남아 있다.
1) 거제(巨濟, 岐城) 반씨(潘氏) / 김계윤(金季潤)
이 고장에는 거제(巨濟)가 관향인반씨(潘氏)의 오래된 집안이 있다. 고려의종이 방폐(放廢)되었을 때, 반(潘)씨 신(申)씨 빈(賓)씨 삼정승(三政承)이 따라왔다고 가요(歌謠)와 이언(俚諺)으로 대대로 전하고 있다. 그 근거는 아직보지 못하였지만 틀림없다 한다. 국사봉(國士峯)에는 반시중의 묘가 있고 고려 중기에 세운 비(碑)에 시중(侍中) 정승(政承)이라 적혀있다. 반우향(潘佑享) 반부(潘阜) 모두 거제반씨 집안의 이름난 분들이다. 이와 같이 이름도 없는 다른 집안과 비할 바 아니니, 나라의 큰 공훈을 세운 뛰어난 집안의 부조묘(不祧廟) 사당을 세우길 논하였다. {거제도 문절사(文節祠) 건립.} [此鄕有潘氏貫巨濟亦古族也高麗毅宗放廢時潘申賓三政承隨來之謠諺遺傳然未見的據國士峯有潘侍中墓而中年立碑麗時以侍中爲政承也潘佑享潘阜皆聞人而若論立祠則似勝於他家無名之不祧歟]
2) 아주(鵝洲) 신(申)씨 / 김계윤(金季潤)
신(申)씨는 아주(鵝洲)가 관향이다. 지금의 아주촌(아양동)이라고, 민간의 구전으로 전한다. 신씨(申氏)의 묘가 있는데 비석이 뽑혀 있다. 다른 사람이장사를 지냈던 연고이다. 아주 신씨를 잘 알지 못해 누차 찾아보았다.지금의 청송 의성 등지를 두루 다녔다. 아주 신씨는 과거에 합격해 끊임없이 성대하게 살았던가문이다.(거제도에는 아주 신씨 집안이 남아 있지 않다) 나는일찍이 의성(아주 신씨 세거지)에 갔을 때 신씨를 만났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며 또한 모른다고말하였다. 어찌 관향에 대해 뚜렷한 증거도 없이 구전으로 말할 수 있겠느냐 했다.
[주] 아주(鵝洲)는 경상남도거제시에 속한 지명이다. 본래 거로현(巨老縣)인데, 신라 경덕왕 때 아주현(鵝洲縣)으로 고치고, 거제군(巨濟郡)의 영현(領縣)을 삼았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아주(鵝洲)의 성으로신(申)·문(文)·갈(葛)·조(曺) 4성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아주 신씨는, 고려 말에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金紫光祿大夫門下侍郞)을 지낸 신익휴(申益休)를 시조로 하고,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낸신윤유(申允濡)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이다. 고려 조선시대 수많은과거 합격자를 낸 유명한 사대부 집안이다. 현재 전국에 약 28000명이있다.
3) 거제(巨濟, 岐城) 빈씨(賓氏) / 김계윤(金季潤)
빈씨(賓氏)는 (유적이나 후손) 알려진 바가 없었는데 여러해 전에 지석리(사등면)에 빈씨(賓氏) 한 분이 살고 있었다고 전하나 그 진위를 알 수가 없다.[此賓氏無聞而年前支石里有賓氏一人云者亦未知其眞也] / 현재 2017년 거제도에몇 집이 거주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4) 연도에 있는 벗에게 부침[寄友人在燕都] /
거제 반씨 시조 반부(潘阜 1230∼?) 몽고 사신으로 갔을 때 고향을 그리며 지은 칠언절구 임.
黃楡塞外但回頭 황유새 밖에서 다만 머리 돌리나니 不覺飄然兩鬢秋 두 귀 밑에 가을이 드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네 速返庭闈長獻壽 빨리 정위로 돌아와 길이 축수 드려라 相逢不惜萬金裘 서로 만나면 만금 갖옷도 아끼지 않으리
[주1] 황유새(黃楡塞) : 중국 동북방에 느릅나무가많이 자생함으로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북쪽 변방을 뜻한다. [주2] 정위(庭闈) : 부모가 거처하는 방이라는뜻으로, 여기서는 고려의 고향에 사는 부모. [주3] 반부(潘阜 1230∼?) :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당대 최고의 외교관이었다. 거제(巨濟) 반씨(潘氏)의 시조. 자는 군수(君秀), 호는 해려재(海旅齋).1267년(원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