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유학자최해두의 시문집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참봉 최응참(崔應參)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사재감첨정 최유성(崔有聲)이다. 할아버지는군수 최후원(崔後遠)이며,아버지는 종모당(終慕堂) 최윤정(崔胤貞)이다. 어머니는처사 김보(金堡)의 딸로 선산 김씨이다. 부인인 처사 이진찬(李震燦)의딸로 성산 이씨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두었다.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부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가정에서배웠고, 자라서는 송천 김천일(金千鎰)과 백회(百悔) 이개(李蓋)에게서 배웠다. 이대재(李大哉), 김방경(金方卿), 이현원(李顯元), 이사응(李士膺), 문천한(文天漢)과 교유하였다. 1711(숙종37)년에 돌림병으로 인해 아우 한 명과 육남매의 자녀가 한꺼번에 죽자 가야 우곡(愚谷)으로 이사하여 호를 우계(愚溪)라하였다. 1720(숙종 46)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근본 원리 탐구에 열중하는 동시에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산수를 찾아다니면서 시와 문장 을 많이 썼다. 최해두는 거창지역에서무신 란을 겪었는데, 『우계집』에는 무신 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거창현감 신정모(申正模)에 대한 서신이 바로 그것이다. 무신 란을 도운 4∼5명만이 주살(誅殺)되고 나머지는 방면된 기록으로 보아 무신 란을 크게 도운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정신없이 따라다닌 수많은 군중들에게관용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집은 1936년 8세손 방환(邦煥)이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이중철(李中轍)의 서문이, 책 끝에 방환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17수, 부(賦) 1수, 서(書) 1편, 제문 2편, 권2는 부록 으로 만사․제문․행록․행장․묘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영물시(咏物詩)․수창시(酬唱詩) ․만시가 대부분이다. 모두 성정(性情)으로부터나온 의사를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다. 문(文)도 사의(辭意)를 전달하는데 힘쓰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편지 가운데 1728(영조 4)년거창현감 신정모(申正模)에게 보낸 것이 있는데, 그해 3월 적(賊)에 의하여 거창이 함락 되었을 때 성을 버리고 도망간 일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696년에 지은 김천일의 제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