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冊2冊 : 四周雙邊 半郭 19.8 x 16.5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 31.4 x 21.7 cm.
조선 중기의 학자인 김근의 시문집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주(軍資監主) 안계(安繼)이며, 어머니 월성 이씨로 중립(中立)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 15세 미만에 경사(經 史)를섭렵하였으며,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대유학자로 성장하였다. 1623(인조 1)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파방되었고, 1642년에 다시 진사시에합격하였으나 관리로 임용되지 못하였다. 그 뒤 초옥을 짓고 송(松)․죽(竹)․매(梅)․국(菊)․연(蓮)을 심고 ‘오우당’이라 호를 삼아 학문연구 에 힘쓰는 한편, 후학들을 모아 지도하였다. 장현광은 그를 유림노성(儒林老成)이라 칭찬하였 으며, 전식․류진 등 당시 인사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그는 『소학』에대하여 남달리 공부했 다. 구암정사(龜巖精舍)에 봉안되었다.
이 문집은 9세손 도화(道和)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책머리에김굉의 서문, 책 끝에 김흥 락의 발문과 도화의 후지가 있다. 권1∼3은 부(賦) 4편, 시 343수, 서(書) 2편, 제문 22편, 권4는 기(記) 1편, 전(箋) 2편, 묘지 2편, 행록(行錄) 3편, 잡저 5편,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와 시에는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난리를 겪으면서 그의 우국정신(憂國精神)과 세 아들이 일찍 죽은 데 대한 슬픔과 번민․한탄을 술회한 작품이 많다. 이러한 감회는 부의 「차유회부(次幽懷賦)」․「차민사부(次悶巳賦)」등과 시의 「우성(偶成)」․「문천장전사술회(聞天 將戰死述懷)」․「신연(新燕)」․「술회(述懷)」․「자탄(自歎)」․「문첩보(聞捷報)」․「영회십운(詠懷十韻)」․「오우당육절(五友堂六絶)」․「술회이절(述懷二絶)」등에 잘 나타나 있다. 서거정의 「한도십영 (漢都十詠)」에 차운한 칠언율시 10수는 서경적인 면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마포에서 뱃놀이하는 장면 등 조선 중기 서울의 아름다웠던 정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의 시는 현실적인 소재를 택하고 있기에 조선 중기의 사회상과 시의 경향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밖에 잡저의 「자해(自解)」는아들 셋과 동생이 일찍 죽은 데 대한 소회를 기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