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박리(文博里)는 가래산(加來山) 남쪽에 위치하며, 대부분구릉지이다. 서쪽에 호정내가 흐르며, 고미디골, 동녁골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안골, 재실마을 등이 있다. 안골은 재실마을 안쪽에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재실마을은 재실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낭성면의 가양리,문박리등에는 아주신씨들이 대성을 이루며 많이 거주하고있는 듯 하다. 여기저기 산재한 아주신씨들의 효자비와 재실 그리고 유허비등이 많다.
문박리 재실마을 앞마당에 있는 아주인 신간의 유허비이다. 유허비에는봉훈랑행상의원직장아주신공휘간유허비(奉訓郞行尙衣院直長鵝洲申公諱幹遺墟碑)라고 음각되여있다. 신간의 유허비 뒤로는 아주신씨들의 재실이 자리하고있다. 유허란유지(遺址)·유적(遺蹟)·구기(舊基)와 같이 ‘남긴 터(자취)’·‘옛터’의 뜻으로, 여기에서는 선현들이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임시 머물렀던곳, 또는 순절(殉節)하거나귀양살이하였던 곳을 가리킨다.
봉훈랑(奉訓郞)은 조선시대종오품(從五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품계(品階)이다. 종오품의하계(下階)로서 봉직 랑(奉直郞)보다 아래 자리이다. 1392년(태조 1) 문산계가 제정된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 (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에게도이 품계를 주었다. 상의원(尙衣院)은 조선시대 임금의 의복 등 왕실의 재물을 관리, 공급하는 일을 담당하였던관청이다 직장(直長)은 상의원에 2명이 배정되였으며 종7품의 정규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