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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세기 대구 옻골에 살았던 백불암 최흥원의 일기인 역중일기曆中日
記를 통해 최흥원이 형성한 관계망을 살펴본 것이다. 최흥원이 평생에 걸쳐
형성한 관계망은 문중 계승 차원에서는 선조에 이어 옻골 최씨의 문인 가풍을
완성한 점에 의미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서인 혹은 노론정권이 대구지역 사족
을 서인화‧노론화하는 의도에 편승하지 않고 정치적으로는 영남 남인, 학문적으
로는 퇴계학파의 주류에 편입되어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한 점이다. 그는 영남
의 명문가, 특히 안동지역의 명문가와 혼인 관계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영남
전역으로 혼반을 형성하였다. 17세기 후반 영남 남인의 수장격인 이현일의
문인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권구와 김성탁을 방문하여 퇴계학파로의 학문적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40대 이후에는 당시 영남 최고의 학자인 이상정과 교유
하는 가운데 퇴계학파의 주류에 편입되었다. 최흥원의 문인록에는 122명의
문인이 등재되어 있는데, 영남 전역에 걸쳐있다. 그는 대구지역 최고의 학자로,
근기남인과도 지속적인 교류를 하였다. 경상감영에서 류형원의 반계수록을
간행할 당시 최흥원이 교정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결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