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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시기는 혼란으로 인해 예제禮制가 문란해졌던 것으
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는 금난수琴蘭秀의 성재일기
惺齋日記, 정경운鄭慶雲의 고대일록孤臺日錄, 도세순都世純의 용사일기⿓蛇日
記, 장현광張顯光의 피난록과 「분찬중사망의략奔竄中事亡儀略」과 같은 경상
도 지역의 일기자료를 중심으로 전란 당시의 상례喪禮와 제례祭禮가 어떻게
수행되었는가에 대해 검토하면서 약 7년간의 전란기를 단순히 ‘예학의 공백
기’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조는 전란 중에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음에도 상복입은 백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상례가 문란해진 것이라 의심했지만, 장현광이 피난중
에 상례를 시행했던 모습을 보면 피난중인 백성들이 상복을 입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기자료를 바탕으로 경상도 지역의 상황
을 살펴보면 전란 피해로 제수를 마련하기 어렵더라도 간소하게 제사를 지속
하려하였고, 피난 중에도 어렵게 상례를 수행하려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비록 전란기에 이론적 측면의 예학발전은 어려웠지만, 경험
적 측면에서 비일상적 상황에서의 의례경험을 축적해나가고 있었다고 정리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