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아주(鵝洲). 자는자경(子卿),호는인재(忍齋). 참의(參議) 신원록(申元祿)의 증손으로,할아버지는신흘(申仡)이고, 아버지는참봉(參奉) 신적도(申適道)이며, 어머니는파평 윤씨(坡平 尹氏) 첨정(僉正) 윤순조(尹淳祖)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權氏) 권익창(權益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신채(申埰)[1610~1672]는 어린 시절부터 총기를 보이며 학문에 뜻을두었다. 1629년(인조7) 향해(鄕解)에 응시하여 급제하였으며, 1643년(인조 21)에는아버지의 뜻에 따라 향시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1646년(인조 24)에는 진사시(進士試)에급제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는데, 성균관에서의 학업 활동이 뛰어나 영남의 삼모(三某)라는 칭호를 받았다. 또한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의 명으로 「태학명(太學銘)」을 짓기도 했으며, 또세자의 명에 의하여 「성학 도명(聖學 圖銘)」을 지었다.
1660년에 모친상을 당하고 1664년에 부친상을 당하자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사모하듯지극 정성으로 전후 상례를 치렀으며, 그 후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실천의 공부에 전념하였다. 이후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집 앞에 매화나무와 대나무를심고 당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 하였다. 아울러 팔지산(八智山) 아래에별업(別業)을 개척한 뒤,그곳의 지명을 팔지(八智)[현경상북도의성군의성읍팔성리]로 고치기도 했다.
학문과저술
문집으로는 4권 2책의 『인재집(忍齋集)』이전하는데, 1931년 후손 신상하(申相夏)가 간행하였다. 문집에 수록된 글들 가운데 「답대학문목(答大學問目)」, 「용학표리설(庸學表裏說)」, 「성학십도명(聖學十圖銘)」 등과 같은 성리학 논설들이 주목된다.
내용
조선 후기의 학자인 신채(申埰)의 시문집. 4권 2책. 석인본. 종손 상하(相夏)가 편집, 1913년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연즙(柳淵楫)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장명상(張命相), 8대손 돈식(敦植), 9대손 세환(世煥) 등의 발문이 있다.
권1·2는 시35수, 서(書) 31편, 서(序) 6편, 기(記) 3편, 권3은 명(銘) 4편, 찬(贊) 2편, 설(說) 4편, 책문 1편, 제문 3편, 잡저 3편, 유사 1편, 권4는 부록으로가장 1편, 행장 1편, 만사 3수, 제문·상량문·봉안문·상향축문(常享祝文)·청증작상언(請贈爵上言) 각 1편, 통문(通文) 2편, 단구서원영건전말(丹邱書院營建顚末) 1편, 편말기략(編末記略)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시는 대체로 자연시가 많으나 거경(居敬)과학문에 관한 시도 간혹 실려 있다. 서(書)는 대부분 학문에 관한 서한으로 ≪중용≫에 관한 연구와 문답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답대학문목 答大學問目〉에서는 명덕(明德)에서 혈구(絜矩) 등에이르기까지 문답 형식으로 광범위하게 해석하였다.
그 중 지(智)에 대해서는 인의예지의 지와 총명예지의지를 비교, 분석하고 그 동이점을 설명하였다. 또, 극명덕(克明德)과 극명준덕(克明峻德)의 ‘극’자와 일일신(日日新)과 구일신(苟日新)의 ‘신’자에대해서도 구분, 해설하였다.
〈용학표리설 庸學表裏說〉은 ≪중용≫과 ≪대학≫은 서로 안팎으로 연관관계를 가지며, ≪중용≫의성(性)과 ≪대학≫의 심(心)은 동정에 관한 표현이라고 설명하였다. 심이란 체용(體用)이 되어 서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그 중 하나가 없다면 완전할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문 策問〉에서는 심(心)은 경(敬)의 대명사로 심이 경 없이 작용하는 것은 정이 아니고 사일 뿐이라고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인심이 되고 심이 경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 곧 도심임을 ≪서경≫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분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성학십도 聖學十圖≫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한 〈성학십도명 聖學十圖銘〉이 있다. 즉, 제2의 서명도(西銘圖)가 ≪소학≫과 ≪대학≫의 근원으로 ≪성학십도≫의 중추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과고려대학교·국민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